항상 모든것이 때가 있는법
터를 잡을당시 축대가 많은 논란이였다.
좌우로 긴 땅에 대웅전을 지을경우 마당이랄것이 없다.
그래서 건물을 뒤로 후퇴시키면서 축대가 필요했다.
이 축대는 건물이 들어선 후에 어찌 해볼 방법이 없는데...
지금 당장 얼마의 애너지를 들여서라도 해결해야할 문제였다.
2단축대...
높이는 일단 2.7m, 이단 2.0m...
하단 축대를 먼저 쌓는다면 상단축대 쌓기를 인력에 의존해야하고, 일단 축대를 쌓고 흙을 되메운후
이단 축대를 쌓을 경우 이단축대를 쌓기위한 중장비의 진동으로 인해 미리 쌓았던 1단 축대의 돌들이
흩으러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그냥 무식하게 경제의 논리에서 출발하였다.
1단축대를 쌓기위한 흙까지 파낸다음 다시 1단축대높이까지 되메우고 2단 축대를 쌓은다음 ...
1단축대를 쌓기위한 흙을 다시 파고 1단 축대를 쌓는 것이였다.
굴토당시 지반의 안전성은 양호한 것으로 판단되어 과감히 결심했다.
그러나....
2단축대를 쌓기위한 하부 작업공간은 굴토후 다시 성토한 흙이다.
끔직했다.
순간 나의 오만이 아닌가 두려웠다.
터파기만 했을때는 단이 꾀 넓었다.
그러나 석축을 쌓고, 석축뒤에 돌을 채우는 폭이 넓다보니 남은 원땅이 저만큼 뿐이다.
사진이라 그렇지...
저 밑에 사람이 서서 저 막중한 돌의 무게를 느낀다 생각해보라...
더구나..
이날밤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강한 비가 밤새 내렸다.
석공분들과 소주한잔 했다.
그나마 저정도 쌓았으니 안심이 되던전날 오후...
무서우셨단다.
단 한단도 놓이지 않은 질펄한 흙위에 섰을 석공의 심정을 아실려는지.
그러나 석공분이 오늘에야 이야기 하신다.
솔직히 무서웠다고......
모험을 한 샘이다.
이런 방식의 석축쌓기는 처음이셨단다.
너무 고마워서...
나의 무지함이 반성으로.
이제 한고비 넘겼다.
석축 위에서 아래로 쌓기.
현대공법에서 top-down공법이 있지만 과학적 안전성을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난 그저 흙의 지내력에 의존한 원시적인 발상 자체였다.
그로 인해 공사비와 시간적인 면에서 많은 절감을 했다.
그러나 아찔하다.
좀더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해야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석공분들이 축대를 볼 때 좌측에 몰려있다.
우측은 절토면도 가파른데다가 2단 축대를 쌓는 시작점이 높아 상대적으로 더 위압감을 느끼는 곳이다.
단 한분의 등이 보인다.
속도전이였다.
석공분들도 힘든지도 모르셨단다.
무조건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높이까지 석축을 쌓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석공이 돌을 다루는 모습이다.
돌이 단단하나 인간의 지혜 또한 만만치 않다.
여러개의 쐐기를 이용해 조금씩 벌려가다보면 돌은 이내 항복을 하는 것이다.
돌과 돌이 만나는 면은 일일이 다듬어 같은 모양이 되게하여 틈을 없앤다.
대목이 면이 일정치 않은 돌위에 그랭이로 기둥을 새우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돌 하나하나 그리 다듬어야하며,
위로 올라갈수록 조금식 단을 주어 쌓아 시각적으로 상부가 쏠리게 보이는 것을 막는다.
아랫 사진에서 돌은 수직으로 보이나 저 끝에 있는 기준을 잡는 목재를 보면 기울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하단 축대가 쌓임으로써 안정을 이루었다.
하부에 약50cm 정도는 돌맹이로 채웠다.
축대하부를 받치는 역활과 배수(물빠짐)를 원활히 하기위함이다.
또한 첫번째 놓이는 돌은 뒷면을 폭1m정도 완전히 콘크리트로 채워 일체화 시켰다.
토압을 고르게 분산시키고, 하부 흙이 빨려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대웅전 기단은 현무암을 사용하였다.
질감이 다르다.
자연석 덤벙주춧돌에 현무암이 그다지 나쁘지 않다.
화강석은 차가운 느낌이 있는듯하다.
다공질의 질팍한 느낌이 차분하며 풍부한 양질감을 주는것 같다.
또한 비에 젖으면 그 색상이 더욱 검다.
포천석의 차가울정도 깔끔함과,
현무암,
문경석 자연석 덤벙주춧돌.
저 주춧돌을 놓고 몸살을 했다.
보이는 건 1/4도 되지 않는다.
전면 축대는 아쉬움이 남는다.
좀더 큰 돌을 구했더라면...
불국사 석축의 돌정도...
이후 전경사진에서 우측 축대 사진을 보시면 ....느낌이....
보이실려나?
쌓는 석공이 다르면 어찌 느낌이 달라지는지...
노동은 그렇다.
자지 자신을 그대로 표현한다.
상상해 보시길.
다음 전경의 석축을 쌓은 석공과 이 석축을 쌓은 석공의 모습을...
아쉽다.
좌측 계단을 앞으로 더 빼내고 화단을 좀더 넓고 높게 쌓아야 축대가 껑충해 보이지 않는데....
석공의 감각을 믿어본다.
"토수"
포천석으로 가공해온 토수가 눈에 거슬렸다.
넌지시 이야기 했더니....
걱정 말란다.
한번 해놓을테니 보란다.
그 결과물이 저기 보이는 토수이다.
저 토수에서 뿜는 물줄기를 봐야하는데....
이렇게....
토수쪽 축대는 상부 2단을 빼고 다른 돌이다.
색상도 다양하고, 거칠다.
이산에서 나는 돌이다.
면이 고르지 않아 돌을 외부에서 반입했는데,
이 축대는 이 산에사 나는 돌을 이용했다.
사람마다 분분하고 주로 깔금한 축대를 선호하지만,
난 아니다.
이 산에서 나는 돌이 이 터에 잘어울린다 본다.
세월의 때가 베일수록 더 그리할 것이라 확신한다.
하여간,
쌓는 석공은 "이가 갈린다" 표현 하셨다.
돌이 단단하고 결이 없어 가공도 힘들고,
날카롭게 깨지면서 정강이가 성한 곳 이 없었다.
죄송스럽다.
하지만 세월이 지난후 그 가치는 인정받으리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이각도에서 보니 석축앞 화단이 더욱 볼품 없다.
아쉽다....
하기야...
보는 눈은 비슷할거고.
언젠가 다시 쌓으면 될일이고.
그나마 화초 몇그루 심으니 조금은 나은듯하다.
언젠가 다시 쌓을거다.^^
보이는 돌중에 제일 큰돌....
저정도 크기로 듬직하게 쌓고싶었는데...
아쉬움이란.
느낌이 오나요?
좌측사진 석축과 지금의 석축...
모든 노동이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한여름 땡볕, 한겨울 한파, 밀폐된 공간에서의 유해물질..
석공도 마찬가지다.
무거운 돌을 움직이고, 깨고, 다듬고...
정강이와 손이 성한 곳이 없다.
돌이 깨지면서 튀는 파편에 정강이가 파이고,
무거운 돌에 눌려 손톱에 멍이들고, 무거운 돌과 시름하다 허리가 병들고.
그렇지만 항상 돌에대한 미안함, 애정이 묻어난다.
상처가 안타까워 조심하시라면,
"돌도 생명이 있는데" 맨날 때리고 깨니 나도 다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부심도 대단하시다.
불타고 남은자리에도 돌은 남는다는 것이다.
나도 석공분들께 장난삼아 하는 말이다.
끝까지 남는 것은 돌밖에 없으니 잘 쌓아주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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