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가족사진

2009가을여행-2

생각하는갈대 2009. 12. 7. 19:55

 다소 늦은 시간에 불국사에 도착하였다.

 우리나라 문화유산중 석공의 기술은 모두 볼 수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곳이다.

 

 돌과 돌은 마치 나루를 깍아서 짜맞추듯 하였다.

 서로 면과 면이 만나는 것이 아니라 결구로 이루어진 구조이기 때문에 어지간한 외부의 충격에는

 무너지지 않는다.

 아치의 형태는 서로가 서로를 누르면서 상부 하중을 분산시키는 구조이다.

 호의 최상부는 사다리꼴의 모양이 상부가 더 길다.

 마치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벽을 형성한 다음 지붕을 얹는 모습이다.

 모두가 돌이지만 기둥과 벽의 형태를 이루고,

 상부의 계단 소맷돌은 처마의 추녀선처럼 다듬었다.

 마침 오른쪽 상단에 추녀가 빼꼼이 보인다.

 난간 또한 기둥을 세우고 기둥에 구멍을 파서 끼우는 형태를 취하였다.

 고유 물성은 석재이나 나무를 다루는 솜씨를 발휘하였다.

 인도의 석굴사원에 비하면 규모는 작으나 정교함으로 결코 뒤지지 않는다.

 

 하부는 막돌이다.

 자연스러운 맛을 한것 살렸다.

 크기또한 굵직하여 안정감을 극대화 했다.

 자연석이 끝나고 기다란 장대석이 올려진 모습을 유심해 보면 경탄스럽다.

 자연석 덤벙주춧돌위에 기둥을 세울 때 주춧돌의 모양대로 나무를 다듬어서 올려놓는 그랭이기법이다.

 보통  돌의 상부면을 수평으로 다듬거나 빈틈에 잔돌을 끼워 상부면을 바르게 하는데....

 여기서는 올려놓는 장대석을 하부의 돌모양으로 파내였다.

 소요치수 이상 폭을 확보한 돌이 필요하고, 한번은 들었다 놓아야 하는 번거러움이다.

 장대석을 나무다루듯 쌓고, 갑석에 난간을 설치하였다.

 돌출된 토수와 하부의 낙수면을 보면 이곳이 물량이 많다는 것과,

 혹여 예전에 산골자기가 아니였나 생각해볼 여지를 준다.

 이리하고도  직성이 안풀렸나보다.

 상부에 다시 기둥과 주두형태와 도리를 형성하고 좀더 작고 잘생긴 돌을 벽삼아 채워 넣었다.

 우측 상부를 보면 마치 각서가래(부연)를 걸고.

 그 위에 지붕을 올린듯 소맷돌을 다듬었다.

 이미 집한채를 돌로 짓고 그 위에 목재로 집을 지은 격이다.

 돌을 다듬는 정교함은 물론 전체적인 디자인 또한 훌륭하다.

 

 

 냇가에 구르고 있는 돌을 가져다 쌓은양 볼륨있고 듬직한 호박돌.

 기둥에 주두를 놓고 서가래를 건듯한 프레임,

 그 안에 벽은 잔잔한 크기의 돌로 채웠다.

 저뒤를 보면 돌판(청판)도 끼웠다.

 그위에 다시 사람이 통행할 수 있는 마루형태.

 절묘한 조화이다.

 자연스러움,

 깔끔함,

 자연에의 순응,

 인간의 호기.

 

 멀리서 전체적인 느낌을 본다.

 중간에 포건물의 살미와 첨차를 본따 돌을 조각하여 싸아올린 기둥의 기초가 보인다.

 다양한 변화,

 자연스러운 것과  인위적인 것.

 가장  중요한 전체적인 조화....

 그리고 속에 깃든 인간의 마음.

 

 토함산 석굴암에 가는 길이다.

 귀중한 유산....

 귀중한 사람.

 사람이 귀하기에...

 사람을 위해 발생한 유산들이라 생각한다.

 권력자의 강압에 못이겨서 노동을 했다고 하더라도,

 이 거대한 불사에 참여한 모든 이는 삶에대한 치열함과 종교적 의지, 

 자신과 주변을 비롯한 모든 인간에대한 염원으로 임했을 것이다.

 그 의지와 염원이 오랜 세월을 이어 문화적 유산으로 남는 것이 아닐까?

 

 석굴암은

 자연적인 굴이거나 파들어간 굴이 안니다.

 필요한 조형을 한후 흙을 덮어서 굴의 형태를 만든 것이다.

 내부에 들어가보면 인산인해로 사진한장 찍기도 힘들고(촬영이 금지되기도함)

 지금의 건물이 들어서면서 처음의 모습은 아니다.

 부처님이 봉인된 꼴이다.

 내부의 절묘한 조각들은 어디서건 사진으로 접할 수 있는 것이고.....

 아쉬움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